배두나 주연의 일본영화 '공기인형'을 보았습니다. 아직 불편한 몸이 회복된 건 아니지만, 꼭 보고싶던 영화라 부랴부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일본영화라서일까요,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모이지 않더군요, 게다가 상영관도 조촐해보이고, 취소하는 사람까지...

하지만 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뭐랄까, 이 영화를 보고는 저도 일본영화에 관심이 많이 갈 정도였으니까요. 어쩌면 배두나가 주연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하 모든 이미지 출처는 구글입니다. 스포일러 없습니다.


일본에서 제작되었지만, 감독이 배두나를 점찍어놓고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하는 만큼 배두나의 모습을 영화 상영시간 내내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배두나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공기인형이라는 말은 저도 처음에는 뭘 뜻하는 건지 몰랐습니다. 보통 튜브인형이라고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아, 더치와이프라고도 하던가요? 하여간 풍선 같은 재질로 몸체를 만들고 거기에 세심하게 만들어진 두상을 붙여 만든 남성용 여자 인형이더군요.

전에 국산 영화 '네 말을 믿으라는 거야'에 마지막 장면에서 한번 튜브인형이 나왔는데 제가 본 튜브인형은 그런 조잡스러운 거라 풍선인형은 다 그렇게 일회용처럼 생겼는줄 알고 있었는데 역시 일본의 인형은 품질이 정말 우수해 보이더군요... 전 단백질 인형(가끔 웹에서 보면 실제 사람보다도 더 생기있고 아름다운 인형들의 사진이 간혹 올라오곤 했죠)의 사진을 보고 놀란 적은 많지만 이번 공기인형에서 공기인형을 보고 놀라기는 처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스초리를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공기인형이 어느순간 마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게 되면서 이 영화는 일본영화답게 담백한 느낌으로 흘러갑니다. 그녀는 무심코 집 밖으로 나오게 되고 마주치는 모든 것에 신기해하다가, 우연히 비디오, DVD대여점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낮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인간다워지고, 대여점에서 일도 하며, 밤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인형 행세를 합니다. 그러면서 대여점에서 함께 일하는 준이치에게 감정을 키워갑니다.

어쩌면, 준이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공기인형인 그녀가 열심히 인간을 배워가도록 만드는 동기가 되는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자신의 몸에 있는 인형의 흔적들을 지우고, 먹을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재치있게 넘기기도 하고, 탄로날까봐 그림자를 피해가며, 인간처럼 살아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꿈 같은 생활은 결국 팔에 상처가 나서 공기가 빠져버리는 바람에 준이치에게 공기인형임을 들키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인간의 삶에서의 모든 경이와 기쁨, 두근거리는 감정의 대가로 슬픔과 아픔, 절망과 고통 또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잔잔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굴곡을 그리며 결말로 치달아가죠...


'생명이란 불완전한 것이다...
사람들은 충분히 서로서로 그 불완전함을 완전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만,
다들 스스로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려고 나서질 못하고,
두려워하며 혼자 남겨져 버린다...'



배두나 하면 제 기억에서는 등에 아기를 업고 술집에 붙잡힌 신랑을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강 스파이크를 날려대던 전직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던 그녀,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긴장해 버리지만, 결국 마지막엔 괴물을 향해 강렬한 화살을 날리던 국가대표 양궁선수였던 그녀가 떠올랐지요.

이 영화에서의 그녀는 한국의 배우이면서도 일본인, 그리고 인형같은 모습의 세가지 이미지를 절묘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두드러지는 이목구비 때문일까요, 그녀는 일본인들 틈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인형의 모습으로 있어도 왠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인형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요.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에서 로봇을 연기하기 위해 눈을 깜빡일 수 없었던 것처럼, 공기인형에서의 배두나 역시 인형인 척 할때는 눈을 깜빡이지 않더군요. 참 긴 시간동안...

그리고 바람이 빠지거나 공기가 주입될 때, 쭈그러들고 부풀어오르는 묘사까지...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도 없이 스스로 대부분을 표현해 내었지요. 물론 완전히 바람빠진 몸은 인형의 몸체로 대신한 곳이 한두군데 있긴 해도...


배두나가 거의 영화의 모든 곳에 나오긴 해도 배두나 외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셋 나오지요. 그리고 그녀와 직접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는 몇 사람...

항상 작은 인형을 들고 다니며 아버지와 함께 보이던 어린 소녀, TV에서 범죄 보도를 적어서는 적당히 각색해서 파출소에 가서 경찰관에게 자신의 이야기인양 털어놓는 할머니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경찰관, 공원 벤치에 언제나 앉아있는 할아버지, 젊고 예쁜 직장동료와 자신을 비교하며 갈수록 힘겨워하는 여인, 여성을 대할 자신이 없어 몰래 훔쳐보거나 가상의 환상으로 자신을 만족시키는 청년, 그리고 사과농사를 하는 집에서 계속해서 보내오는 사과 때문에 사과만 봐도 구역질이 나와서 사과를 잊기 위해 온갖 먹을것을 폭식하던 여자...


비단 일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도시 속 풍경이기도 하지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제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네요. 그녀의 독백처럼 서로서로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마주잡으면 이 숨막힐 듯한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런 도시의 풍경들을 보면서, 저역시 숨막힐 듯이 답답해져 오더군요...


"이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 해줄 수 있니?"

대여점에서 일하는 준이치... 그는 공기인형 노조미와 함께 일하면서, 처음에 정체를 몰랐을 때도, 후에 알게 되었을때도 한결같이 대해줍니다. 노조미는 준이치 덕에 인간으로서 많은 기쁨과 추억을 얻게 되죠. 바다에도 가 보고, 영화도 함께 보고, 식당에도 가 보고...


그녀는 준이치의 말을 종이에 적어 간직하고, 준이치와 영화에 대한 퀴즈도 풀고, 그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함께 있을때의 추억의 물건들을 모으면서 행복감에 젖어갑니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공기인형인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마음이 없는 인형이 되어 줘! 난 인간이 귀찮을 뿐이야!"

공기인형 노조미의 실제 주인 히데오입니다. 혼자 살며 직장에서 힘겹게 일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인형에게 애정을 쏟는 존재입니다... 뭣보다... 그래도 명색이 공기인형 노조미의 주인이자, 영화속에 꽤 비중있는 존재인데, 스틸샷 하나 찾기가 어렵더군요... (특별출연한 오다기리 죠 보다도 비중이 없어!!!)

자신의 옛 여자친구의 이름인 노조미라는 이름을 인형에게 붙여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인형에게만 관심을 쏟는, 그의 말 그대로 인간을 귀찮아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인형이나 애완동물, 혹은 아끼는 물건에 인격을 부여하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날이 사람이 무서워져서일까요... 지금의 시대는 옛날과 달리 마음을 열기가 상당히 두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을 열면 열수록, 마음을 다칠 각오를 해야만 하죠. 저역시 의식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게 되고, 많은 경우 그 거리를 좁혔다가 상처를 받은 경험들이 많아, 차라리 거리를 좁히지 말걸 하는 후회를 수도 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때는 마음이 다칠 가능성이 많이 줄어드니까 말이죠...

물론 거리를 두는 것에 절 비난하며 떠난 사람도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누군가에게 다가서고, 또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 거 같습니다...


어쩌면 노조미는 아직 사람에게 상처입은 적이 없기에 누군가에게 다가서는데 망설임이 없었던 걸까요... 그녀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우울한 경험들은 그녀를 어떻게 바뀌게 할지 눈여겨 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네가 본 세상은, 그저 슬프기만 한 세상이었니?
기쁜 일이나, 즐거운 일은 조금도 없었어?"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에서 오다기리 죠가 나오길래 조금 놀랐습니다. 특별출연이었지만, 노조미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고, 그의 분위기에 딱 맞는 역할이더군요... 그의 말은, 노조미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어줍니다.
물론 저에게도...

이 영화를 볼 때 느꼈던 생각은...

이 영화는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이 어떨까요?

저도 모르게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될 리가 있나, 너무 어거지네'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실제 일어난 일을 영화화 한 건 아닌데 말이죠. 어짜피 상상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내용에, 저는 왜 그렇게 '현실감 없다'라는 비판적인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을까요...

일본의 정서를 아시는 분은 더욱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확실히 한국에서라면 말도 안되는 장면들이 나오긴 합니다만, 일본의 경우, 아무리 눈꼴시고 이해하지 못할 광경이나 이상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참견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더군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지나칠 정도라고 할까, 옛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고 한다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영화 속 상황들이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더군요.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수상쩍은 아가씨를 첫 대면에 바로 아르바이트로 고용해준다던가, 몸에 있는 이상한 선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없이 화장을 해준다던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현실적인 고증이 있어야 하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일본영화에 좋지 않은 선입관이 가득했던 저인지라 많이 고민하다 선택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보고나서 참 남는게 많은 영화네요. 솔직히 그 느낌들의 반의 반도 글솜씨 부족한 저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덧...

1. 마지막 스텝롤이 올라갈 때 배두나가 일본어로 가장 먼저 올라갈때는 감회가 새롭더군요... 왠지 닌자 어세신처럼 우리 배우의 이름이 주역을 차지할 때의 기분은 누구나가 같지 않을까 합니다...

2. 그리고 스텝롤을 유심히 보고 있던 이유는 '오다기리 죠' 때문이었습니다. 오다기리는 몰라도 죠는 과연 한문으로 있을까 없을까가 궁금했던 거죠. 그런데... 결국 오다기리 죠의 이름은 한자가 아닌 가타가나로 올라가더군요. 한자이름이 아니었나보네요... 그럼 오다기리 죠는 본명일까요, 가명일까요, 본명이라면 과연 오다기리는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습니다.

3. 공기인형 자체가 욕구해소용인지라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더군요. 제 생각에는 그나마도 일본 원판보다 몇군데 잘려나가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잘려나간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중요한 내용이 있는 곳은 아니겠죠), 만약 관객 확보를 위해 청소년 등급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잘라내야 할까 생각해보니...

청소년 관람불가 외에는 영화 상영시간이 1/3은 줄어들 거 같더군요...

4. 욕구해소 장면도 나오고 배두나의 나신도 자주 나오지만, 그런 장면들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었으니... 준이치가 노조미의 몸에 입김을 힘껏 불어넣는 장면... 자신의 몸에 가득한 준이치의 입김에 행복해하고, 그 입김이 새어나갈까 두려워 숨을 내쉬는 것조차 기겁하며 막고, 방에서 즐거이 떠오르며 기뻐하며, 자신의 몸에 더이상 펌프질을 못하도록 펌프를 몰래 버리는 것까지...

자신의 몸을 비춰보며 그 안에서 대류하는 공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5. 왜 우리 주위의 모든 존재는 인간이 되고 싶어할까요... 늘 같은 이야기지만, 그들이 인간의 삶을 경험하면서 나날이 행복해하는 그 모든 것은, 우리가 너무 흔하게 경험해서 이제는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식상한 행복들입니다. 마치 무심히 밟고 지나가버리는 세잎클로버처럼 말이죠...

그런 장면을 볼때마다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은 설경구, 문소리의 우리 영화 '오아시스'입니다. 장애가 있어 스스로 움직일수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는 문소리가,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설경구와 휠체어에 탄 채 가끔 밖에 나갈 때, 단 두번 마치 환상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설경구와 '보통의 연인들이 늘상 하는 평범한 행동'을 하는 환상에 젖는 장면이지요. 보통 사람은 아무런 감흥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그네들에게는 눈물겹게 간절한 소망이듯이...

노조미에게는 보통 사람들처럼 음식을 먹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많은 사람들 속에, 마음껏 케이크의 촛불을 향해 입김을 불어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겨우 막차를 탈 수 있었네요. 왜 전 항상 이렇게 아슬아슬한 상황을 맞는 걸까요... 그나마도 성수까지만 가네요... 간만에 달밤에 산책하며 집에 들어와 졸음이 가득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들이 희미해질까봐, 마치 방금 꾼 꿈이 아스라이 스러질까봐 급하게 쓴 글이라 두서가 없네요. 부디 2010년에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 중에 두가지가 이 영화속에 녹아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비록 상처 받을것을 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오늘도 포근한 밤 좋은 꿈을 꾸시길 빌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 주연의 영화라면 '가위손' 이후로 쭉 팬이 되어있는 편입니다. 

이하 모든 이미지 출처는 구글입니다. 딱히 스포일러 없습니다.


문제는 참... 기껏 왕십리 역에 갔지만 지하철 역 어디에도 영화관 표시가 없더군요. 지하철 주변 지도를 봐도 CGV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결국 밖에 나와서 찾아보려는데 나오니 이건 더 헷갈리는 겁니다. 애초에 제가 심각한 길치이자 방향치인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왕십리 CGV는 초행길이 아니라는 거... 분명 한번은 와본 거 같건만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이거 심각해요... 하아...


결국 트위터에 하소연... 다행히 한 분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겨우 허겁지겁 도착했네요. 다행히 꼴찌는 아니었다는 게 위안이었어요.

3D 입체영화는 아바타 이후로 두번째였지요. 부푼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내용은 단순한 편입니다. 

영화 보는 내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더스틴 호프만과 로빈 윌리엄스의 후크Hook가 연상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동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15년 후, 앨리스가 19세가 된 때의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앨리스가 우연히 다시 조끼를 입고 시계를 가진 토끼를 다시 만나, 쫒아가다가 나무 구멍속으로 떨어지고, 이상한 나라로 들어서게 되지요. 


그곳에서 앨리스는 그 사이 붉은 여왕이 이상한 나라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토끼와 쌍동이, 도도새, 파란 애벌래, 웃는 고양이, 주머니쥐, 모자장수를 만나 하얀 여왕을 도와 이상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은 조니 뎁이었지요. 영화 홍보 포스터나 영상들도 거의 그를 앞에 내세우기도 했고, 조니 뎁 자신도 미친 모자장수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나 녹색 콘택트 렌즈, 짙은 화장으로 연기했지요. 역시 조니 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조니뎁은 캐릭터가 완전히 굳어져버리는 듯 하기도 하네요... 혹시 최근 진지한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에서의 잭 스패로우 선장이나, 찰리의 초컬릿 공장에서의 공장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미친 모자장수까지... 조니 뎁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은 '귀엽게 미쳐버린 환상의 존재'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뭣보다 제 생각엔 저 세 존재 다 행동거지가 비슷하기도 해요. 횡설수설, 정신없는 손동작. 아무래도 현실에서 보기는 조금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죠.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붉은 여왕이었습니다. 처음 볼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계속 웃음이 터지게 되는 여왕은, 그 위엄있는 모습과 잔인한 모습, 표독스런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머리 때문에 웃음이 터지게 되더군요. 연기도 일품이었습니다. 조니 뎁과 더불어 또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가 하얀 여왕으로 나옵니다. 붉은 여왕의 동생이기도 한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악으로 묘사되는(실제는 악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붉은 여왕과 대비되어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선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녀가 영화에 나오는 비중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붉은 여왕이 그 커대한 머리로 웃음을 준다면, 하얀 여왕은 그 손동작에 계속 웃음이 터지더군요. 아니, 잭 스패로우의 손동작에 물들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외에도 많은 주인공이 나오지만, 제 경우 솔직히 컴퓨터 그래픽의 등장인물에는 감정이입하기가 좀 어렵더군요. 그저 '앨리스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들' 정도가 다가 아닐까 합니다. 하긴 원작에서도 그렇겠지요. 영화 슈렉속의 동키나 고양이 정도 되면 모를까, 토끼나 쌍동이, 체셔 고양이나 푸른 애벌레 엡솔룸도, 앨리스와 함께 모험을 떠나지는 않고, 중간중간 등장해 도와주는 존재더군요.


특히나 조금 내용을 알아듣기 어려웠던 게, 원작 동화도 이상한 나라에서는 도무지 현실 세계의 상식을 적용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만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를 앨리스가 해쳐나갔는데, 이 영화 역시도 일반적인 상식은 상당히 많이 비틀어버린 편이라,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대사들이 대체 어떻게 진행될 지 알수 없었습니다.


어릴 때야 상식에 지배받지 않는 감수성 예민한 순수한 시절이라, 형실적이지 못한 이상하기 그지없는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진할 수 있었겠지만, 이젠 점점 어릴때의 환상계와 멀어져가는 나이가 되면 영화를 보면서 대체 왜 저 상황에 저런 결과가 되는지 이해하기 좀 어려워지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19세인 앨리스도 그래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팀 버튼 감독은 영화를 너무 어렵게 만들지 않고 많이 친절했던 편이라 생각하긴 합니다만...

역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카엘 엔데의 '네버엔딩 스토리'와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는 것. 네버엔딩 스토리의 진정한 의미가 그렇듯이, 자신이 만들어낸 소망이 아닌, 자신의 진정한 소망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가볍게 봐야 할 거 같습니다.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기에 블랙 코미디나 깊이있는 스토리와 비비꼬인 설정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만, 자세히 보니 이거 디즈니 영화로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디즈니랜드 영화에 심각한 영화는 어렵겠지요? 제 생각에는 영화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내용으로 보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를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 했다는 것이 문제로군요. 러블리 본즈에서 늦지않게 깨달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조니 뎁의 모자장수는 앨리스를 이끌어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모자장수 역시 처음에는 무력한 존재로 나옵니다. 결국 그 역시 앨리스와 함께 차츰 깨달아가는 존재라는 거죠. 
모자장수가 앨리스와 더불어 성장해가는 모습 또한 볼거리라 생각됩니다.

영화 속에서 원작동화의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

이제 저는 동화의 내용이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커졌다 작아지는 물과 케이크라던가, 하트 카드 병사들, 사라지는 고양이 체이셔 등등 원작을 읽어봤던 사람들을 위해 멋진 그래픽으로 묘사된 재연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감독의 선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느낀 점 몇가지...

1. 번역자가 고생 많이 했을 거 같네요. 좋마운 날(아마 좋은 + 고마운 날이 합쳐진 거겠죠?), 날뜩한 검(날카로운 + 섬뜩한 검?), 거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표지판들은 뒤죽박죽, 모자장수가 횡설수설...

무엇보다도, 영어였다면 영어 싯귀의 운율에 딱딱 들어맞았을 대사들이, 한글로 그대로 바꾸니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수없는 말들이 난무하더군요. 만약 영어 잘하는 분이라면 많은 것을 느꼈을 거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푸른 애벌레의 이름인 '엡솔룸'은 아마 absolute의 의미겠지요.

2.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붉은 여왕도 제 생각에는 피해자일 수 있겠네요. 단순히 머리가 크다는 이유로, 그녀의 곁에는 아부하는 아첨꾼과, 속으로 딴 생각을 품은 충복, 그리고 그 힘에 두려워 굴복하는 자들만이 남아버렸죠...

'사랑받지 못하고, 외면당할 바에야 미움받는 것이 낫지.'

상당히 가슴이 시리도록 박혀오는 여왕의 말은, 제게는 무척이나 공감되는 말이었지요. 미움보다 더 두려운게 무관심이라고, 애정이 증오가 되버린 경우는 저도 많이 보았지요. 결국 '가해자 없는 피해자'를 만들어 버리게 되지요.


영화 내내 머리가 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만 나오는 여왕이지만, 찾아보니 정상적인 모습도 있군요. 왠지 슬퍼보이기도 합니다.

3. 만약 3D영화가 이 영화로 처음이라면 감탄했겠지만, 이미 '아바타'를 본 뒤라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저절로 비교하게 되더군요. 좀 아쉽긴 합니다. 이 영화도 나름 멋진 화면을 보여주지만,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행성의 자연경관, 그리고 동식물들은 환상적인 3D효과를 내기에 참 어울리고,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주었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의 배경효과는... 아바타만큼은 감탄하기 어렵더군요.

다만... 영화상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뭔가 날아올때, 눈앞까지 날아오는 것 같아 저절로 움찔 피하게 된다는 것 정도?

4. 애석하게도, 아바타에서는 자막이 거의 완벽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꽤나 번져보이는 자막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중앙에서 좀 위쪽으로 나온느 자막은 번지지 않지만, 맨 아래 위치에 나오는 자막은 3D의 효과가 덜했는지 번져버리더군요. 혹시나 해서 안경을 벗어보니 그제서야 또렷이 보입니다... 많이 아쉬웠어요.

5. 앞으로도 이런 3D 영화가 대세가 될 거 같더군요. 반가운 일이긴 합니다만, 영화비가 배나 뛰어오르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겠네요.


그래도 꽤나 재밌게 보고 만족했던 영화였습니다. 


영화 끝나고 뒷풀이... 전등과 전등의 빛과 그림자가 그려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라서 찍어봤습니다.


술을 먹지 않으려고 버텨봤지만 무시무시한 게임 벌칙때문에 결국 마시게 되었네요. 거의 치사량...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술기운이 남아서 좀 횡설수설이고요. 아직도 술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양치질을 해도 소용없네요.

보드게임카페에 가서도 술냄새 풍길게 확실하네요... 
하아... 모두 절 술꾼으로 볼게 확실...


며칠전에 오늘을 위해 받은 TRPG D&D 4th 룰북입니다. 
아아... 역시 던전 앤 드래곤즈의 룰북 일러스트는 예술이네요. 보기만 해도 제가 저 속에 있는 듯 합니다.

TRPG 이야기에 부럽다고 하시는 분들 많으시지만, 정작 기회가 되니 오시라고 하면 모두들 시간을 핑계대시기만 하시고 말이죠. 결국 취미를 위해서는 열정이 필요한 건가 봅니다.

솔직히 저도 걱정되기는 하네요. 그렇다고 스카웃된 걸 거절하기도 뭐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명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해볼 수 밖에...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영상 | Posted by 아스라이 2010. 2. 28. 02:39

러블리 본즈 - 이미지와 상징의 보물상자


14살, 나는 살해당했다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입니다.
무엇보다도, 두 감독의 이름부터가 절대 범상치 않지요. 그래서인지 두 이름으로 더더욱 홍보가 되었고, 기대를 하게 만들었던 영화입니다.

- 이하 이미지 출처는 구글 이미지입니다. 딱히 스포일러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밝게 자라나던 14살 소녀 수지는 어느 날 꿈속에도 그리던 남자친구의 데이트를 앞두고 기분이 들뜹니다. 그녀는 다정하신 부모님과 정겨운 동생들, 조금 괴팍하지만 이해심 많은 할머니가 있고, 생일선물로 카메라도 받을 정도로 특별히 불행이란 것을 모르고 자라났지요


거기다 그렇게도 혼자 애태우던 잘생긴 남자친구로부터의 데이트라니! 남자친구가 써준 시까지 받아서 수지의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 하교길에 한 남자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순간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부모, 수지를 잃은 가족들은 크나큰 슬픔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영화는 가족들이 슬퍼하는 현실속의 세계와, 수지가 차마 떠나지 못하고 가족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현실과 천국의 중간 세계를 번갈아 보여줍니다.


처음에 저는 소녀의 억울한 영혼과 아버지가 힘을 합하여 범인을 잡고 소녀의 원한을 푸는... 오늘 뒷풀이에서 한 분이 말하신 대로 '사랑과 영혼 2'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쯤을 지나면서... 영화의 의도는 범인을 잡아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행히 제가 늦지않게 영화가 의도하는 방향을 잡아서인지 그때부터는 영화의 진행이 납득이 되더군요. 

다만... 영화 마지막이 조금 이상했는데, 혹시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좀 의견충돌을 빚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결말에 입김을 넣는 경우는 AI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 몇 된다고 하죠.

오래 전, 그러니까 1997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가요... 제게는 꽤나 친분이 깊던 대학 선배가 있었는데, 여느 날처럼 밤에 통화를 했지만 그 다음날 영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요...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밤에 그 선배가 그렇게 바라던 약속을 해주었는데, 전화를 끊고 바로 반나절 만에 교통사고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더군요... 이튿날 선배의 영정사진 앞에 절을 할 때는 정말 꿈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이었죠... 그날 이후, 주위 사람들을 내일도, 모레도 당연히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많이 고쳐졌습니다. 이별이나 죽음을 매일매일 대비하며 사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하루하루 후회없이 보내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요. 

매년 기일이 되면 강원도에 가서 선배가 잠든 곳을 찾아보고, 그 선배의 집에 가서 인사드리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연례행사였는데, 영화에서처럼 차마 하나뿐인 아들이 쓰던 방을 없애지 못하고 그대로 두시던 부모님이셨는데, 처음 한두 해는 그 방에서 잠드는 것이 그렇게도 무서웠는데...

몇년 전, 무덤은 그대로였지만 두 분은 어디론가 이사를 가셨더군요. 저에겐 아무것도 알리지 않으시고 이사를 가셨다는 점에서, 섭섭함보다는 두 분이 마음을 정하셨다는 생각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수지가 있는 중간 세계는 온갖 환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해와 달, 그리고 물 등 수많은 이미지와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긴 시간 타로를 했던 저로서는, 이 영화를 꼭 보려고 했던 이유가, 상징과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였기도 합니다. 

강이님 말씀대로, 이미지라는 것은 시대나 그 사람들의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학이나 거북이가 우리나라에서는 장수의 상징이지만 중국이나 북유럽에서는 불길하게 여긴다거나, 다른 나라에서 좋은 이미지인 까마귀가 우리 나라에서는 불길한 이미지인 것처럼), 올바른 이미지와 상징의 해석은 혼자만의 느낌이 아닌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의미이자, 그 이미지를 표현한 시대나 시점 또한 생각해봐야 하겠지요.

영화에서는 많은 상징과 이미지가 나오지만, 영화의 비중 자체가 죽은 뒤의 세계보다는 현실 세계에 비중을 둔 만큼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아 좀 아쉬웠습니다. 영화에 배치된 그 수많은 환상적인 장면들은, 저 혼자서 무슨 듯일까 온갖 상상을 다 해보게 만들었지요. 물론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진짜 해답은 영화를 만든 감독을 앉혀놓고 직접 듣지 않는 이상은 그저 추측에 불과하겠지요.

감독은 영화의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기를 바라며 이 이미지를 만들었을까요...

영화 속 이미지를 보며 그 위에 한번 제 나름대로 느낌이 통할 거 같은 타로카드를 놓아 봤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화 초반에는 수지가 가족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며, 자신을 죽인 범인에게 한없는 증오심을 품는 것을 보며... 저역시 범인은 자신의 죄값으로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어린애들만 골라서 죽였던 연쇄살인마라면 더욱이.


하지만... 이 영화가 다른 원혼의 복수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수지가 누군가를 한없이 증오하기에는 너무 어린 소녀여서였을까요, 범인에게 살해당한 다른 아이들도... 증오심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렇게도 사후세계를 밝고 따스하게 그린 영화는 정말 처음 보는 거 같았습니다. 더욱이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살해된 영혼이 말이지요.

만약 저였다면 어땠을까... 제가 저 세계에 있었다면... 그곳은 극도로 춥고, 어두우며,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 속에 모든 원망과 저주와 증오와 분노를 살인자에게 집중시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속에서처럼 저런 따스한 세계는 나올 수가 없겠죠.

때때로 수지의 세계는 어두워지고, 말라서 부서지고, 흐려서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수지는 자신이 있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수지와 그녀의 친구 홀리는 천국에 가지 못한 그 사후세계에서도 나날이 따스한 빛을 만들고 싱그러운 초록의 대지 위에서 즐거워하며 밝게 지냅니다.

현실세계와 사후세계... 사후세계의 존재는 현실세계의 그리운 사람들이 못내 안타까워 이야기를 전하려 하고, 현실세계의 존재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느꼈을 때만 간간히 그 느낌을 받을 뿐이겠지요. 

수지는 가족들이 그리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아버지와 어린 동생은 수지를 그리워하다 때때로 수지를 느낍니다. 그리고는 더욱 그리워하며 슬퍼하지요. 그런 가족들을 보며 수지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말을 걸면 걸수록, 가족들이 자신을 잊지 못하고 더욱 슬퍼한다는 것을 차츰차츰 알아가게 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수지는 가족들에게 점점 목소리를 전하기보다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되뇌이는 말처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죽은 사람이 안타까워도, 언제까지나 죽은 사람을 곁에 두고 슬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인 듯 합니다.


이 영화의 주요한 이미지와 상징인 등대, 팔각정, 배, 그리고 물...


현실세계와 사후세계의 두 분위기가 교차되는 것은, 예전에 참 인상깊게 보았던 게임 원작 영화인 사일런트 힐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사일런트 힐도, 밝은 색채의 현실세계와 회색빛 음영의 사후세계, 그리고 악마가 활동하는 붉은 세계가 교차되며 나왔었지요.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아무래도 두 거장이 만든 만큼 기대치를 너무 높인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죠...) 한 분이 댓글 달아주신 것처럼 이 영화는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지기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그나마 감독의 구성으로, 슬픔과, 몽환적인 느낌과, 범인과의 심리적인 추격전을 느낄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간만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였네요. 이제 다음주면 팀버튼 감독에 조니 뎁 주연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개봉하겠네요. 기대가 많이 됩니다.



- 모든 이미지 출처는 구글 이미지입니다. -

오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 2012를 보고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대로 '재난영화' 전문가라는 감독의 명성대로, 확실하게 박살을 내어줍니다. 다만, 조금 긴 듯한 러닝타임 두시간 반은 조금 버겁긴 했네요.


스토리는 단순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어느날 인도의 한 젊은 지질학자가 태양과 지구의 이상현상을 발견하고 관측해옵니다. 점점 심해지는 이상현상에 에드리안 햄슬리(치웨텔 에지오포 배우)라는 흑인 지질학자를 불러 알리게 되고,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낀 그는 급히 백악관에 달려가 고위간부인 칼 안휘저(올리버 플랫 배우)에게 알립니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과 전세계 대표들과 모종의 계획을 강구하게 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그 중 중심이 되는 것이 세계 정상 8자회담인데... 일본은 들어가도 우리나라는 끼어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어쨌거나 크나큰 혼란을 염려한 정부 극소수의 정보 통제로 인해 일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재난을 맞이하게 되고 연이어 벌어지는 재난은... 셀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끕니다...


영화는 인디펜던스 데이와 투모로우를 만들었던 감독이라는 기대답게 상당히 화려하고 강렬한 충격적인 재난들이 펼쳐집니다. 게다가,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재난이란 게 상당히 다양하다는 데 재미가 있습니다. 지진은 물론이요, 격렬한 화산폭발(활화산이나 휴화산도 아닌 평지에서), 대륙의 이동, 그리고 쓰나미, 화산재로 인한 기온저하, 마그마 분출 등 그야말로 재난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듯 합니다. 다만, 기나긴 영화 상영시간의 반 정도가 부서지고 무너지고 폭발하는 장면이라... 처음에는 감탄하고 재밌었지만 갈수록 지루해지기도 했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영화가 촛점을 맞추려는 것은 재난의 장면보다는 멸망의 순간 앞에 사람들이 무엇을 마음먹는 지가 더 궁금했던 저였으나 아비규환 속에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채 몇 되지 않더군요. 대부분은 비명지르며 죽어갑니다...
(그게 현실일지도 모르겠네요.)


그와중에 주인공인 잭슨 커티스( 존 쿠색 배우)가 등장합니다. 모두가 미처 모르는 새 재난을 당해 죽어가는 와중에 우연히 몇가지 사건으로 인해 대 재난의 징조를 알게 되고,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다만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전작들처럼 눈에 확 띄는 영웅적인 인물(직접 전투기를 조종하여 외계인과 싸우는 대통령이라던가, 혼자서 죽음의 극한지역으로 떠나는 아버지라던가...)이라기 보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의 톰 크루즈 같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하긴 그 많은 죽음의 위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영웅이기도 합니다.)


역시 중간에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은 역시 우주전쟁의 그와 많이 비슷한 느낌이더군요.




다만 역시나 재난의 장면들이 긴 만큼이나 주인공 가족이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장면 역시 여러번 나옵니다. 한두번이야 손에 땀을 쥐며 아슬아슬한 느낌이 있었지만, 이거 너무 자주 위기랑 마주치니 '또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으로, 영화는 종말의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두 부류의 인간이 서로 반목하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냉혹한 현실은 인정하지만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과...


차갑게 현실을 직시하고 계산하면서 가능한 방법들만을 모으고,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길만한 일들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목표 앞에 냉혹하게 버려버리는 사람들로...

결국 처음에는 서로 협력하던 그들은 점점 갈등이 고조되고 맙니다.

그들은 무엇을 알아내고 무엇을 시도했을까요...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남으려는 시도를 할까요...
과연 인류는... 멸망이라는 대 재앙 속에서 어떤 결말을 맞을까요...

결말은 영화속에서 직접 확인해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영화속의 미국 대통령입니다. 예전 영화에도 아주 드물게 흑인대통령이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현재 오바마 대통령이나 얼마 안 남은 2012년이란 시점을 보면 모델은 누군지 짐작가네요.

역시 미국의 시각대로 그린 영화라서인지 미국의 대통령은 끝내 모두의 귀감이 될만한 인물로 표현되어지는군요. 대통령의 선택을 보면서 전 엉뚱하게도 '저렇게 영화가 나와버렸는데 막상 2012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자기 살겠다고 달아나 버리면 전국민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꼼짝 못하겠구만...'이라는 이상한 잡념이...


영화는 시종일관 내내 비참하고, 슬프고, 절망적인 분위기라서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알수 없는 코믹한 장면이 묻혀버리는 느낌이 강합니다. 위 사진과 같은 재난방송에 자신의 지난 영화 장면을 끼워넣기도 하고, 찰리가 직접 만든 동영상 같은 장면이 있었습니다만, 그닥 영화관에서 웃음소리는 거의 안터지는 분위기였죠.

제 개인적으로 참 재밌었던 대사는 주인공이 아내에게 빨리 피신하라고 전화하는 내용이었는데, 아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이제는 안전하다고 했다'고 하자, 주인공이 바로 말합니다.

'걔는 영화배우잖아!!! 대본을 그냥 읽는거라고!!!'
 
아 그래요, 그아저씨 아직 주지사죠? 게다가 그렇게 대본 읽던 주지사가 주인공이 정곡을 찌르자 마자 바로 지진에 휘말려 사망하시더군요
(... 아무리 그래도 터미네이터신데...).



'누가 뒤에 남겨질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종말 같은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종말... 물론 언젠가는 오겠지요. 그러나 휴거 사건, Y2K사건을 겪고 나니 언젠가부터 무덤덤해지더군요. '이번엔 2012년이야? 그날 지나고 나면 또 언제가 종말이라고 예언될까' 하는 정도...?

그러고보니 세계 종말의 위기를 세번이나 맞게 되는 저희 세대도 참 박복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나마 오래전 프랑스에서 혜성이 충돌한다는 뉴스때문에 모두가 광란의 하루하루를 보냈던 프랑스같은 사태가 안 벌어지는 것이 다행이랄까요...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종말을 맞을 것처럼 후회없는 오늘을 보내라.'가 제게는 가장 와닿았습니다.

종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의미로서의 종말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든요. 누가 알겠습니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입을 열게 될지... 시간이 앞으로도 많을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에 미루고 미루고만 있다가 저처럼 결국 말하지 못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버리고는 후회하는 것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용기를 내어 해야 할 말을 해주는 것이 더 좋을테니까요.

2012년 12월 21일... 그날이 멸망하게 되는 날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날이 오기전에 지금이라도... 미처 용기내지 못해서, 차마 쑥스러워서 아껴두었던 말을 건네어 보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포근한 밤 좋은 꿈을 꾸시길 빌며...
나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