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 김치전쟁을 보았습니다. 예전 식객을 재미있게 봐서 이번에도 꽤나 기대가 되었지요. 다만, 영화에서도 나오는 대사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김치이건만, 너무나 늘상 당연하게 우리의 밥상에 있던 터라, 항상 주연이 되지 못하고 조연으로 밀려나 있는 김치"가 주제라는 것이 많이 궁금했습니다.



- 이하 이미지 출처는 구글 이미지입니다. 딱히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식객은 누구나 알고 있는 만화가 허영만씨의 인기 만화입니다. 저역시 참 재미있게 보고 있지요. 그래서, 오히려 영화에 심각한 이야기나, 권선징악 같은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예상하고 보았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스토리에 그다지 기대를 안 했다고 할까요. 지금은 연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 참 재미있게 보았던 김 에피소드나, 고등어 구이 에피소드를 보면, 은근히 음식을 소재로 서로 자존심 건 대결구도이긴 했지만, 승패가 명확히 갈려 악이 무너지는 스토리 같은 것은 식객 원작에서는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원작의 그런 결말에 불만스러워 하는 독자들이 많았지만, 저도 상당히 공감했던 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본의 대표 음식만화인 '미스터 초밥왕'이 재밌다곤 해도, 주인공의 음식을 먹고 온갖 황홀한 표정들을 지어대며, 환상 속에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며 천국의 세계를 눈앞에 보면서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친다거나 눈썹이 곤두서고 하는 것은 솔직히 오버 아니겠어요... 그런 면에서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은 상당히 공감이 가지요. 흑백이면서도 세심하게 묘사된 그림 하며, 특히나 '김' 에피소드의 마지막, 성찬이 구한 김을 몰래 구입해서 먹어보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김치전쟁의 마지막에 대해선 드릴 이야기가 없지만, 예전 식객 1편의 마지막은 그런 점에서 조금 충격적이더군요. 


결국 제 경우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은 바로, 김치전쟁이라는 부제 답게 온갖 김치를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었고 이 영화에서는 정말 넘칠 정도로 생생한 김치들이 등장합니다. 특히나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대회에 나가는 김치라고 한다면 꼭 등장하는...


태극기 김치...
예고편에서 저걸 보고 얼마나 기대가 되던지... 만드는 장면이라던가... 먹어보는 장면이라던가... 설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다만 정작 영화에서는 그냥 슥 스쳐가더군요. 역시 저건 겉멋만 든 김치인건가...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자세히 보면 흰 부분은 무우채 같고... 건곤감리인 하늘, 땅, 물, 불은 재료가 가지일까요... 태극은 김치일테고... 그런데 저 하회탈과 각시탈은 재료가 뭘까요? 계란 노른자는 김치와는 안 어울리는 거 같고, 생강은 저렇게 크지 않을 거 같은데...



영화 대결 장면의 주인공인 성찬과 장은 외에 참가자들도 분명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일류 요리사들일 텐데... 영화 상영시간의 제한 때문인지 그들의 이야기나 그들의 작품이 순식간에 스쳐가는 것이 안타깝더군요. 멋진 김치들이 참 많았는데 말이죠... 저 태극기 김치를 포함해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일본 총리(총리였던가 뭐였던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누군가가)가 우리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야키니쿠(불고기)와 기무치는 우리 일본의 전통 음식입니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 일본인이 진지하게 저런 소리를 하면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헛웃음을 짓고 말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독도 망언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가 보이는 반응이 언제나 그렇듯이) 저 소리를 그대로 믿고 있는 국가가 하나둘이 아니라죠. 그 나라의 세계지도에는 동해 East Sea라는 지명 대신 일본해 Japan Sea라고 적혀있고 말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제게 해준 이야기가 같이 떠오르더군요. 피자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만약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정말 그 나라 고유의 전통 피자를 먹어보면 늘상 먹던 피자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고요. 늘 먹던 맛이 아닌거라죠... 결국 정작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뜨린 피자는 이탈리아가 아닌 미국의 요식업체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 제공한 것이랍니다. 아마 피자를 유럽이 아닌 미국의 음식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지도 모릅니다. 자장면이 중국 전통 음식인줄 아는 것처럼...

결국 세계에서 김치를 먹던 사람들이 정작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의 전통 김치를 먹게 되면 자신들이 늘상 먹던 김치와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이 즐기던 음식은 김치가 아닌 '기무치'였지요. 예전에야 우리처럼 땅 속에서 긴 시간 발효시키지 않고 강산 용액 등으로 짧은 시간 숙성시켜 만든 백김치가 대부분이어서 우리의 깊은 맛을 내는 김치와 비교되었지만 지금의 일본산 기무치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우리의 김치가 더욱 발전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무치에게 무릎을 꿇고 말겠지요.

반면, 전 세계에서 즐기는 초밥인 스시는 누구나 일본을 인정하고 있고, 누구나 일본의 음식임을 알고 있습니다. 초밥의 세계화에 일본이 들인 노력이란 대단한 것이었고, 그만큼 결실을 맺었지요.

그런데, 한가지 재밌는 것은 그 대단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의 초밥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초밥을 산산히 격퇴한 주인공이 우리의 김밥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죠. 초밥이 이 땅에 뿌리는 내리기에는 소풍이나 기쁜 날이면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싸주신 김밥에 대한 우리의 추억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저역시 초밥보다는 김밥이 익숙하고 더 맛있더군요.

쓰다보니 영화 얘기가 많이 다른 데로 샜네요.

1. 영화 시작하고 등장인물 소개가 나오는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아 정말 오프닝 스텝롤 대박이예요. 꼭 보시길.


2. 지금껏 식객은 영화가 둘, 드라마가 하나였습니다. 김강우의 1편, 김래원의 드라마, 이번 진구의 2편이네요. 그런데 원작의 성찬은 좀 통통한 체구가 아니었던가요? 세명 다 호리호리한 체구라 제게는 항상 왠지 성찬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김치전쟁에서는 성찬의 성격이 저리 우유부단했나 싶기도... 원작에서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과감해보였는데, 김치전쟁에서는 대체로 등 떠밀려다니는 느낌이 들더군요.



3. 김정은은 제가 '재밌는 영화'를 하도 재밌게 봐서인지... 코믹한 모습이 제게는 깊게 각인되어 있어요. 가문의 영광도 그렇고... 그런데 진지한 모습도 참 좋더군요. 그러고보니 1편에서는 임원희도 진지하게 나왔네요. 역시 '재밌는 영화'에서 온갖 오버액션을 펼쳤는데 말이죠.


4. 영화를 보고 '김치축제'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들더군요. 정말로 축제답게 영화속에 참 정겹게 묘사되더군요.


5. 1편에서 숯에 대응될 만한 비밀병기가 김치전쟁에서도 등장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그 비밀병기를 위해 온몸 바쳐 고생하는 것은 장은이네요? 왠지 김치전쟁에서 성찬은 별로 고생을 안 하는 것 같았어요. 기껏해야 폭풍우 속에 배 몰고 나간 거... 정도? 이래저래 영화가 많이 압축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6. 결국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김치이기 때문에 정작 사람이 김치에게 밀려나 조연이 되었다는 느낌도 드는데(음식영화가 대부분 거의 그럴테지만), 영화에서 은근히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이 성찬의 엄마에 대한 비밀이었습니다. 원작에도 언급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성찬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기대가 되었거든요. 실제, 상당히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7. 결국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과의 화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버티던 과거의 자신과의 화해... 결국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저 사진처럼... 모두 함께 모여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8. 그나마 웃을 곳이 별로 없는 영화에서(코미디 영화는 확실히 아닙니다만), 모두에게 웃음을 주던 세번째 심사위원이 압권이었습니다. 다만... 전 영화 내내 저 심사위원의 혀를 믿을 수가 없네요. 우습다고 생각합니다만, 제 경우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이라고 하면 '미스터 초밥왕'의 그 심사위원처럼... 주인공을 마땅찮아하고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차별하지만, 막상 음식을 입에 넣으면 혀만은 정직하기 그지없는 그 심사위원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있어 문제로군요...


9. 우리는 늘 김치를 먹기 때문에 김치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제목에도 썼듯이 고추장 없이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어찌될지... 차승원씨가 나오던 순창고추장의 '매운 맛이 사무칠 때'가 생각나네요.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독일인가... 에서 도저히 못먹겠는거 꾸욱 참고 치즈 잔뜩 바른 소시지 한입 입에 대보다가 진저리치며 도망가는 건데 찾기 어렵더군요.





마치 공기처럼... 너무나 우리 곁에 늘 있어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기에 정작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김치이지만, 현재 김치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이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안도감도 듭니다. 외국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과, 오래 보관하기 어려운 음식, 그리고 지나친 냄새가 문제라고 하던데... 그 모든 단점을 보완한 김치도 이미 개발되었다고 하니 이미 알려진 세계적인 건강식품이라는 명예에 더해서 간편하고 먹기쉬운 음식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영화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길. 특히 일본에서.


오늘도 포근한 밤 좋은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