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 Posted by 아스라이 2013. 9. 18. 11:39

영화 관상을 보았어요.(스포일러 없습니다)

 

이하 이미지 출처는 구글입니다.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 관상을 보았습니다.

 

 

간만에 기대하던 한국영화이기도 했어요. 어째서인지 제가 보는 영화들이 점점 현대물이나 스릴러물에서 멀어지고 사극이나 역사극, 판타지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래 공상과학물로만 흘러가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만...

 

 

워낙에 출연진이 든든하다보니 이 얼굴들만 봐도 뭔가 이야기가 나오겠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포스터기는 했죠.

 

 

줄거리는 문종 - 단종의 시대, 단종을 받들려는 김종서 세력과 스스로가 왕이 되려는 수양대군 세력의 치열한 대립이 이루어지던 그 시점에, 우연히 몰락한 양반 집안으로 근근히 살아오던 내경이 천부적인 관상 보는 솜씨를 기회삼아 다시 집안을 일으키고자 기회를 잡아 한양으로 올라오면서 범과 이리의 싸움 속에 휘말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 백윤식과 함께 등장하는 진형 역의 이종석... 시크릿 가든에서 까칠한 음악가로 나와 오스카를 마구 씹어대던 그때부터 인상깊었다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상당히 기억에 남는 배우였습니다만... 영화에서는 상당히 크나큰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외엔 그렇게 큰 비중은 없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마치... 김상경, 이준기 주연의 '화려한 휴가'에서의 이준기를 보는 느낌이 내내 들었으니까요.

 

 

반면 팽헌 역의 조정석은 상당히 비중이 높더군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로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서 그런지 여기서도 시종일관 납득을 못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송강호는 몰라도 나머지 배우들이 코믹한 모습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수가 없는 상황이라(사극인데다 먼저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무시무시한 세력다툼의 한가운데이기도 해서) 영화 초반의 밝은 분위기는 거의 조정석 혼자 만들어 가더군요(특히 닭 먹는 장면에서 대사 없이 표정과 눈빛만으로 웃음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반면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는 가히... 영화의 최종보스, 게임에서의 끝판왕 분위기가 풀풀 풍깁니다. 가상 역사영화가 아닌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니만큼, 모두들 수양대군이 김종서와의 세력다툼에서 승리할 거라는 것은 알기 때문일수도 있겠네요. 그가 김종서를 비롯한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할 것인지, 자신의 조카이자 왕세자인 단종에게 무슨 짓을 할것인지, 결국 훗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육신에게 무슨 짓을 할것인지, 미리 이야기라도 하듯이 이정재는 첫 등장때부터 엄청난 압도감을 뿜으며 등장합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는 말이 있죠. 수양대군 역시 기나긴 시간동안 조선을 다스렸던 왕인 만큼 이루어낸 업적 또한 만만치 않아 좋은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만, 업적이 아무리 크다 해도 저질렀던 끔직한 일들을 묻어 버릴 수는 없는 것이겠죠. 그래서인지 만약 수양대군이 실패하고 단종이 천수를 누리며 즉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영화 내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실제 영화 내내 역사가 바뀔 수도 있는 희망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며 계속 이어집니다만...

 

문제는 그놈의 책사... 나관중이 자신의 입맛대로 써내려간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책사 제갈량을 삼고초려 끝에 얻어서 그가 예상하는 대로 전황이 이루어지고 적들도 모두 그 손안에 놀아나 관우와 장비를 비롯한 무인들이 모두 감탄하며 오나라의 주유가 날씨까지도 조종하는 제갈량한테 열등감 느끼다가 열폭해 죽고, 마지막엔 사마의마저 이미 죽은 제갈량에게 속아 도망칠 정도로 띄워준 것처럼...

 

아무리 주인공과 김종서가 온 힘을 다해도 모든 것은 수양대군의 책사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더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제갈량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실제 역사상에서의 승자니 그렇겠지만... 

 

 

과거 권세를 부리던 대가문이었다가 몰락하여 초라하게 살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다 보니 늘 다시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어쩌면 세사람의 당연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라는 소망때문에 스스로 범과 이리 사이로 걸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워졌던 영화입니다.

 

영화는 두시간 정도입니다만, 들어보니 거의 한시간 가까이의 내용을 편집해서 잘라낸게 그 정도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후반부 좀 급하게 달려간 느낌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려나간 한시간의 분량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요, 분명 영화사나 배급사에서 영화 상영시간의 수익문제(영화 상영시간이 일정 시간을 넘어가면 하루에 상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문제)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알지만,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꽤나 스토리가 깊이있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워졌어요(하긴 그랬다면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불평도 나왔겠죠. 심지어 지금도 너무 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째 요즘 조선시대 폭군의 영화화가 계속되고 있는 듯 한데 광해군과 수양대군 나왔으니, 다음은 연산군 나오면 되는 걸까요?(생각해보니 이미 왕의 남자가 나왔네요)

 

모두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