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 Posted by 아스라이 2010. 5. 13. 17:08

공주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왕자

 




공주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왕자


기사의 검 아래 어린 딸이 능욕당하는 밤이면
헐벗은 농노는 어설픈 낫질로 오크가 된다.
하지만 토벌대 화살받이로 나온 아들의 얼굴이 보이면
사람이 아닌 오크의 마음은 사람의 그것보다 더 슬퍼지고
아비인 줄 알 길 없는 아들은 죽기 싫어 아비를 내치는 밤
어미는 맘 졸이며 둘 다 무사하길 빈다.


마을에 돌림병과 함께 흉년이라도 들어버리면
아내는 신을 찾으며 먹을 것을 구걸하러 교회에 가지만
성직자의 지팡이가 저주받은 자라 아내를 쳐죽일 때면
남편은 뼈만 남은 몸을 이끌고 스켈레톤이 되고
어린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날 저녁 식사를 상상하지만
십자나무 아래에서 불타버린 부모는 올 줄 모르고
아이들은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상상하며 죽어간다.


사냥 미끼가 된 벌거숭이 소년이 울부짖는 밤
비단옷의 도련님은 유모에게서 정의를 배우고
마녀로 끌려간 어린 누이와 닮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누이를 지키지 못한 오빠는 언제나 늑대처럼 표효하고
늙은 영주 침실에서 옷을 벗는 어린 누이는
내일 있을 반역자들의 처형식에 오빠가 없길 소원한다.


성 안 공주는 항상 바깥 세상을 그리며 용사를 기다리고
아름다운 공주를 상상하며 그 용사가 나이길 빌어보지만
성 안 공주를 구하는 건 언제나 다른 성의 왕자
공주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 때 뚱뚱한 공주를 보면서
차라리 모험의 길을 생각해 보지만
모험이란 귀족만의 특권
자유 없는 농노의 신분에 자유를 찾아 모험을 하면
기사의 화살 아래 죽어가는 것은 도둑이라는 이름의 나.



출처 :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조차 찾기 힘든
하이텔의 환타지 동호회 fntsy 황계환(fantajio)


바로 이 글이 환타지의 진짜 모습인 걸까요...
그럼에도 저는 오늘도 환타지의 세계로 걸어가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