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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4 심심한 카메라 2
  2. 2008.02.08 [펌]아리랑의 의미
상념 | Posted by 아스라이 2009. 12. 24. 18:05

심심한 카메라

으음... 베가본드님에게 전염되었을까... 괜히 혼자 카메라를 만지작대고 있습니다...
하긴 서로 만나게 될지야 알수 없지만, 서로 보고 못알아보면 안되기는 하죠...
제 블로그 대문에 사진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눈코입만 분간되게 찍은거라서...
게다가 저역시 최근 사진이 없다보니 한번 찍어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모습입니다. 뒤에 정신없는 방은 모른 체 해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무서워요...

흠 그러다보니... 왜 울티마 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은 걸까 생각해 봤는데...
혹시나 모르지만 정말 레어템이나 눈이 번쩍 뜨일만한 뭔가를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긴 해요. 예를 들면, 동서게임체널에서 정발해줬던 정품 세트라던지, 울티마 팬의 로망인 손수건 지도나 문스톤이라던지...(국내 정발은 정말 초라함 그 자체지만... ㅡ.ㅡ) 아니면 지난번에 링크했던 수제 매뉴얼이라던지...(솔직히 있기만 하다면 당장 전페이지를 문구점에서 복사해서 소장하고픈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울티마에 관한 텍스트 파일이나 책이라던지...

혹여 만나게 되면 누군가 소장하신 품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 거죠. 특히나 제가 몇가지를 이사를 자주 다니는 통에 잃어버리고 말아서 더욱 안타까운 건지도 모릅니다. 현재 울티마 9 정품 시디 하나 건졌군요... 웹에서 여기저기 울티마에 관한 파일이나 텍스트를 수집했지만 그역시 한계가 있는 거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소장품들이 있으시면 전 뭘 보여드리지 하고 생각하다가... ㅡ.ㅡ


문득 생각나 꺼내보았습니다. 제가 간혹 들고다니는 주머니입니다. 먼지투성이에 상당히 낡았지만 오른쪽에 글이 쓰여 있네요.


꺼내보면 별과 달이 수놓아진 천에 쌓은 뭔가와 수정구슬 두개가 나타납니다(펠루카와 트라멜이라고 우겨볼까 하다가 관뒀습니다.)


네 이쯤되면 다 아시겠지요. 타로카드입니다.


이 타로카드는 아르디안 카드라는 덱이며, 저의 두번째 카드이고, 첫번째 덱은 현재 봉인되어 있습니다.

아마 만나게 되면 저는 희망자분께 타로 점을 봐드릴 수가 있겠네요.


봉인이라 하니 뭔가 거창하게 들리는데, 별거 없습니다. 한번 꺼내볼까요...


역시 천으로 잘 싸여있고, 펼쳐보면...


이 덱은 보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라이더 웨이트 카드니까요...


봉인해둔 이유는 별거 없고... 이 덱은 제 첫 타로카드입니다. 그러니까 무지하게 오래되었지요. 대학시절 우연히 알게 되어, 미국에서 주문해서 항공우편으로 받아보았던(미국 직수입 항공우편은 이것과 디아블로1 정품 둘이로군요)... 아직 하이텔, 천리안, 나우무리가 PC통신의 대명사이던 시절인 거죠.

그렇게 기나긴 시간동안 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몇년 전인가 카드 한장이 소실될 뻔 했고... 생각해보니 카드라는 것은 78장 중 단 한장만 훼손되도 78장 전체가 다 사용이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잘 모셔두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덱을 하나 더 구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말이죠, 울티마에도 처음 집시여인이 카드를 보여준다는 거죠, 그리고 그 생김새또한 타로와 대단히 닮아있습니다. 게다가... 타로카드의 메이져 카드는 22장입니다. 0번 Fool부터 22번 World까지 있지요.
울티마는 8이란 숫자가 기본이긴 하지만, 8개의 미덕과, 8개의 미덕의 반대되는 던전의 이름, 그리고 3개의 불길, 그리고 가고일들이 받드는 3개의 원리까지...

8 + 8 + 3 + 3 = 22가 됩니다.(왠지 짐캐리 주연의 '23'이 생각나긴 하지만...) 재미있네요.

아시다시피 저 22라는 숫자는 우리가 인생에 태어나 살아가며 죽을 때까지 겪게되는 사건을 22가지로 표현한 것이지요. 어떻게 일생동안의 사건을 22가지로 분류가 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만 복잡스런 현대가 아닌 수천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22가지면 충분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음... 아무래도 제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에 있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성탄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마리에~

덧, 베가본드님... 누구랑 닮았다고요...?


오른쪽 말씀이시죠? 어헝헝~ 꺼이꺼이~
상념 | Posted by 아스라이 2008. 2. 8. 22:58

[펌]아리랑의 의미




《‘아리랑’은 한국 민족의 상징적인 대표적 민요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한국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불려진 노래일 뿐만 아니라, 오늘처럼 남북이 분단되어 올림픽 단일팀이 하나의 국가(國歌)를 부르기 어려울 때는 ‘아리랑’을 국가처럼 합창하여 한 민족임을 확인한다. 》
그러면 ‘아리랑’은 무슨 뜻인가? 아무도 모른다. 현재까지 수긍할 만한 해석이 없었다.
한 연구논문을 읽었더니 아리랑의 ‘뜻은 없으며 흥을 돕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말’이라고 쓴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오래 탐색해 왔으므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필자의 견해를 밝힌다.
문제의 구절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경기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또는 사투리로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에 나오는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 ‘아리랑 고개’ 같은 말의 뜻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아리랑’의 ‘아리’의 첫째 뜻은 ‘고운’의 뜻이고, ‘랑’의 뜻은 ‘님’이다.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 ‘고운’ ‘곱다’ ‘아름다운’ ‘아름답다’의 뜻으로 쓰인 흔적은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아리+다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몽골어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 ‘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리랑’의 첫째 뜻은 ‘고운님’이다.
‘아리’의 둘째 뜻은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을 담고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마음이) ‘아리다’의 동사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이것이 형용사가 되면 ‘아리’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이 된다. 이때의 ‘아리랑’은 ‘(사무치게) 그리운 님’의 뜻이다.
‘쓰리랑’은 ‘아리랑’의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인 것이다. ‘랑’은 한자로서 삼국시대에는 ‘낭(郞)’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에는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는 주로 ‘郞’자, 여자는 ‘娘’자로 표시하였다. 발음은 모두 ‘랑’이며, 뜻은 ‘님’이다. 신라 향가(鄕歌)의 죽지랑(竹旨郞), 기파랑(耆婆郞) 등이 좋은 예이다.
‘아라리’는 근 현대에 뜻을 몰라 잃어버린 말인데, 필자는 이를 ‘상사병’의 고대 한국어라고 판단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아리’(가슴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쓰리다’를 강조할 때 ‘쓰라리다’라고 강조사 ‘라’를 넣는 것처럼 ‘가슴아리’는 ‘가슴아라리’ ‘아라리’와 같다.
‘삼국유사’ 등에는 상사병에 걸린 사랑 이야기가 몇 개 나오는데, 상사병에 해당하는 순수고대 한국어를 한자가 수입된 뒤 언젠가 그만 잃어버린 것이다. 민요 ‘아리랑’에 들어있는 ‘아라리’가 바로 ‘상사병’의 순수 한국어인 것이다.
‘아리랑’ ‘아라리’ 등의 용례로 보아서 필자는 ‘아리랑’은 먼 옛날 삼국시대에 애창된 노래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후 수많은 변천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는 동안에 ‘아리랑’ ‘아라리’의 뜻은 모르게 되었지만, ‘앞소리’ 또는 ‘후렴’으로 지금도 애창되는 것이라고 본다.
‘아리랑’이 뜻도 모른 채 일천수백 년을 내려온 것은 이 고대어 속에 현대어로는 치환할 수 없는 절묘한 뜻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어는 이미 분화되어서 ‘고운님’과 ‘(사무치게) 그리운 님’을 복합한 1개 단어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면 ‘고운님’과 ‘(사무치게) 그리운 님’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복합된다. 그러니 ‘아리랑’을 대체할 현대 한국어는 없는 것이다.
그 위에 ‘아리랑’과 ‘아라리’는 뜻과 소리에서 실로 절묘한 운율 대응을 이루어서, 기막히게 멋진 표현인 것이다. 현대 한국어로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의 이 멋있는 절묘한 표현을 도저히 대치할 수 없는 것이다.
구태여 현대 한국어로 리듬을 접어두고 번역하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곱고 그리운님/곱고 그리운님/(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워라”의 뜻이다. 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는 “곱고 고운님/그립고 그리운님/(사무치게 그리워) 상사병이 났네”의 뜻이다.
노랫말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간다”의 표현을 운율에 맞추어 ‘아리랑’ 다음의 토씨를 생략한 것이다. “곱고 그리운 님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이다. 한국전통사회에서 마을공동체의 활동범위를 차단하는 것은 ‘고개’였다. ‘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공간으로의 ‘이별’을 의미했다.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곱고 그리운 님과의 가슴아픈 이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랑’의 뜻을 모르게 된 이후에는 ‘아리랑’이 고개이름인 줄 알고 ‘아리랑고개’로 생각하여 다수의 가사들이 지어지기도 하였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사랑’을 가장 절묘하게 잘 표현한 노래로서 삼국시대 이후 전승되어오는 동안에 모든 고장에서 자유롭게 가사와 곡을 창작하여 붙이게 되었다. 아리랑의 가락(리듬)도 사랑과 이별의 그리움뿐만 아니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표현하게 되었다.≫
예컨대 ‘밀양아리랑’ 계열의 아리랑은 씩씩하고 약동적이며 낙천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아리랑은 모내기, 김매기에서 두레꾼들이 합창하는 중요한 ‘노동요’로도 발전하였다.
아리랑이 천수백년을 다양하게 계승 발전해 오는 동안에 노랫말과 가락은 수천개가 창작, 탄생했지만 변하지 않고 전승되어 오는 것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등의 노랫말이다.
이것이 뜻을 모르게 된채 변함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제는 ‘후렴’이나 ‘앞소리’처럼 되었다.
현재 ‘아리랑’은 임진왜란 무렵 때부터의 것이 채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무렵
할미성 꼭대기 진을 치고
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병자호란 무렵
오라배 상투가 왜 그런고
병자년 지내고 안그런가
(아리랑 후렴)
△흥선대원군 집정 무렵
조선 팔도 좋다는 나무는
경복궁 짓느라고 다 들어간다
(아리랑 후렴)
현재 표준적으로 불리는 다음의 아리랑 노랫말은 아리랑 부분 외에는 일제 강점기에 변형 작사된 ‘신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데리고 가시는 님은
백리를 가도 날아서 간다.
여기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다음 절인 ‘나를 데리고 가시는 님은 백리를 가도 날아서 간다’의 대응이다. 밀양 아리랑 계통의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는 ‘곱고 그리운 님이여 고개를 넘어 멀리 떠날 때도 나를 데리고 가소’의 뜻이다.
승려 시인 한용운(韓龍雲)이 일찌기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는 명구를 쓴 바와 같이, ‘아리랑’(곱고 그리운 님)은 남녀의 연정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민족은 ‘곱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모두 ‘아리랑’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캄캄한 어둠의 시대에는 남녀의 연정보다 민족의 ‘자유’ ‘해방’ ‘독립’이 더 절실한 아리랑이었다. 한국인들은 일제 침략자들을 아리랑으로 풍자, 비판, 저항하고 민족의 ‘자유’ ‘해방’ ‘독립’을 아리랑으로 노래하였다.
인천 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왜놈의 등살에 못살겠네.
(아리랑 후렴)
일본 대판이 얼마나 좋아서
꽃같은 나를 두고 연락선 탔는가.
(아리랑 후렴)
산천초목은 의구(依舊)한데
이 땅의 주인은 어데갔나.
(아리랑 후렴)
풍년 들어도 먹을게 없어
북국의 벌판을 찾아 갔나.
(아리랑 후렴)
논밭은 헐어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어서 정거장 된다.
(아리랑 후렴)
말깨나 하는놈 감옥소 가고
일깨나 하는놈 북망산 간다.
(아리랑 후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싸우던 독립군 광복군들도 ‘광복군 아리랑’을 불렀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한국인들이 사랑하고 소망하는 ‘곱고 그리운 님’ ‘아름답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모두 ‘아리랑’으로 상징화되었다. 우리시대 한국민족에 가장 곱고 사무치게 그리운 ‘아리랑’은 어떤 ‘아리랑’일까? ‘통일아리랑’이 아닐까?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출처 -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262750 -


흐음~ 아리랑, 쓰리랑의 뜻이 그 뜻이었군요. 고운님, 가슴아픈 나의 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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