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양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94년 영화였으니, 거의 20년전 영화네요. 영화 시작 때 출연진 순서로 장국영, 임청하, 양조위, 유가령, 양가휘, 양채니, 장학우, 그리고 특별출연하는 장만옥까지... 그때 당시에 정말로 좋아했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진 영화였죠. 특히나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장국영의 멋진 열연이 인상적인 영화이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94년도에 봤을 때는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하고도 지루하며 재미없는 영화이기만 했죠. 강호의 검객들이 나오지만 기대하던 액션이나 무공 대결의 멋진 장면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과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이야기 뿐이었으니까요.

 

그러디 이번에 동사서독이 다시 개봉되어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느낌일까 하고 보았는데... 이번엔 영화가 이해가 가면서... 한없이 슬퍼지더군요.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이미 오래전에 개봉했던 영화였기도 하고, 스포일러 없이 도저히 리뷰를 쓸 수가 없기에, 내용에 스포일러를 담습니다... 이 영화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써야 할 것 같네요.

 

 

 

장국영의 멋진 모습... 가장 빛나던 때가 아니었나 합니다. 장국영의 역할은 구양봉으로, 중개인을 직업으로 삼고 사막에서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무사들을 알고 있으며, 원한을 가진 사람과 대가를 받고 사람을 죽여줄 무사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영화 내내 구양봉이 보고 들은 것을 설명하는 형식입니다.

 

 

 

그에겐 매년 경칩이 되면 술 한잔 하자며 찾아오는 황약사(양가휘)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올해도 어김없이 구양봉을 찾아온 황약사가 자신이 아는 여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술, '취생몽사'를 함께 마시자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술은 지난 일을 잊게 해준다는 술로서, 함께 마시자고 하지만 구양봉은 거절하고 황약사만 그 술을 마시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황약사는 지난 일들을 모두 잊고 맙니다.

 

 

 

기억을 잃은 황약사는 남쪽으로 찾아가는데,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친구의 아내인데, 친구가 떠나자 황약사도 더이상 찾지 않았던 곳이었죠.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알아보지만 아무 말 없이 헤어집니다.

 

 

 

그리고 얼마 후 황약사는 한 무사와 만나게 되지만,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사는, 황약사와 자신이 절친한 친구였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일어섭니다. 황약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무사는, 황약사를 죽이기 위해 왔지만 눈이 거의 멀어가는 상황이라 죽이지 못하고 떠납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황약사는 다른 사람과의 시비 끝에 칼부림이 벌어지려는 모룡언(임청하)을 막다가 큰 부상을 입고 죽을 뻔 합니다. 모룡언은 훗날 황약사를 죽이기 위해 구양봉에게 살인 청부를 하는데, 황약사가 다른 여자 때문에 자기 동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룡언때문에 황약사가 부상당한 후 두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술자리에서 황약사가 농담을 한거죠. 모룡언에게 여동생이 있으면 아내로 삼겠다고... 그말을 들은 모룡언은 승낙하고,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기가 죽일 것이라고 했는데, 황약사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죠.

 

 

 

그리고 여동생인 모룡연(임청하)이 찾아와 오빠의 의뢰를 파기하고 도리어 자기 오빠를 죽여달라고 합니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오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하죠. 그렇게 구양봉에게 모룡언과 모룡언은 번갈아 찾아오며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뢰를 해달라고 합니다만...

 

 

 

결국 모룡언과 모룡연은 한사람이었죠. 이중인격이라고 해야 하나...

 

 

 

구양봉은 그녀가 상처를 받아 그렇게 되었을거라 생각하고 두 입장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되고... 그날 밤 잠든 구양봉을 모용언이자 모용연인 그녀가 찾아와 어루만지지만,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서로가 아닌 서로 다른 누군가를 마음속에 그리며 그저 몸만을 빌려 위로하다 헤어집니다.

 

 

 

 

그리고 그녀는 떠나 무공을 연마하여 독고구패라는 고수가 됩니다.

 

 

 

하지(夏至)에 구양봉에게 한 여인(양채니)이 찾아오는데, 자신의 동생이 검객들에게 실수를 했다가 살해당했다면서 복수를 부탁하러 오지만, 가진 게 없어 당나귀와 달걀 한바구니밖에 없는 그녀를 보고 구양봉은 달걀을 댓가로 복수를 맡아줄 사람은 없다며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달걀보다는 그녀 자신을 파는 것이 더 비쌀거라고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누군가 부탁을 들어줄때까지 기다리겠다면서 머물죠.

 

 

 

얼마 후 눈이 멀어가는 무사가 다시 찾아옵니다.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고향에 피는 복사꽃을 보고 싶어 그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구양봉이 말해주는 일거리는 얼마 후면 들이닥칠 마적들과 싸우는 일입니다. 그는 달걀을 가지고 복수를 부탁하는 여인을 보며 자신의 친구와 정을 통했기에 떠나온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고...

 

 

 

 

마적들과 싸우게 될 날 전날 밤에, 구양봉에게 그 사람이 황약사라고 알려주고 마적들과 싸우기 위해 떠나면서 복수해줄 사람을 기다리던 여인에게 충동적으로 입맞춤을 하고는 떠나 마적들과 싸움을 시작하지만, 눈이 거의 안보이는 상황에서 힘겹게 싸우다가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죽고 맙니다.

 

 

 

검술이 뛰어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홍칠(장학우)을 주시하던 구양봉은 숫자 7을 만나면 죽게 될거라는 운세 때문에 껄끄러워 하면서도 그를 데려와 식사를 주고 신발도 사 신기면서 마을로 데려가 마적들로부터 보호해 줄 무사로 소개하면서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죽은 눈먼 무사의 시체를 보여주며 마적들 중 왼손으로 칼을 쓰는 한 사람을 주의하라고 가르쳐주죠.

 

 

 

 

과연 뛰어난 실력으로 마적들을 물리치고 눈먼 무사를 죽인 검사도 미리 경고해준 덕분에 죽이는데 성공하여 두 사람은 돈을 벌지만, 홍칠은 달걀을 가지고 기다리는 여인의 부탁을 받아들여 결국 그녀의 복수를 해주면서 한 손가락을 잃고 그날 밤 심하게 앓게 됩니다. 여인은 구양봉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구양봉은 의원을 부르려면 돈이 든다며 거절하고 여인보고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결국 실리를 따지는 구양봉과 옳은 일이라고 믿기에 구양봉이 반대하던 여인의 복수를 해준 홍칠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자신의 아내와 함께 떠나 3년후 마적대의 두목이 되어 훗날 서독과 대결하다 함께 죽게 됩니다.

 

 

 

구양봉은 떠나던 날 사랑하는 여인에게 함께 떠날것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형수가 되었다며 거절하여 혼자 떠나왔지요.

 

 

 

구양봉은 눈먼 무사의 고향에 복사꽃을 보러 찾아왔지만 복사꽃은 없었고, 그가 말하던 복사꽃은 그의 아내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구양봉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이 자신의 남편 것임을 알아보고 남편이 죽었음을 알고 오열합니다.

 

 

 

황약사는 구양봉의 연인이자 형수와 함께 있습니다. 그녀는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하기에 황약사는 복사꽃이 필 때 구양봉을 만나러 가고 그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그녀와 만납니다. 황약사는 그녀를 볼 수 있는 이유가 그 뿐이기에 경칩이 되면 구양봉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죠. 그녀는 구양봉을 거부하고 그의 형과 결혼했던 자신의 선택을 시간이 흐른 지금 후회하고 슬퍼하고 있었고, 그 모든 사실을 황약사는 알고 있지만 구양봉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슬퍼하던 그녀는 얼마 후 황약사에게 술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죽습니다. 그 술이 바로 취생몽사였고, 황약사는 그 술을 구양봉에게 전했지만 구양봉은 마시지 않았고, 황약사가 마시고는 모든 슬픔을 잊고 복사꽃만 기억한 채 은둔하였고, 사람들로부터 동사라고 불렸죠.

 

 

 

구양봉은 얼마후 형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스스로 그녀가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황약사가 가져온 취생몽사를 마십니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과 똑같은 장면이 흐릅니다. 구양봉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취생몽사라는 술은 과거를 잊게 해주는 술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그녀가 했던 농담일 뿐...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라는... '잊지 말자'던 다짐... 결국 구양봉은 황약사와 달리 아무것도 잊을 수가 없어 어느 날 그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구양봉은 고향으로 돌아가 서독이라 불리죠. 지금은 떠나버린 장국영이 특히나 그리워지네요...

 

 

 

결국 이 영화는 동사와 서독의 이야기였습니다. 동사는 결국 황약사였고, 서독은 구양봉이었죠. 지금도 어려운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전체적인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고, 생각해보면 볼수록 우울해집니다.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조금씩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더군요. 구양봉의 형수를 황약사가 사모하다 결국 그녀가 죽은 뒤 은둔하게 되고, 눈먼 무사의 아내와 정을 통했던 자이자 죽이기 위해 찾아다닌 자가 친구인 황약사였고, 구양봉이 설득하여 데려왔던 홍칠은 결국 마적 두목이 되며 구양봉의 운세대로 서로 싸우가 같이 죽게 되고...

 

영화에는 다른 화려한 무협 액션 영화와 달리 악을 무찌르는 선한 영웅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무공을 가졌지만 돈은 없는 무사들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었지만 사람을 죽일 힘은 없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죽고 죽임당할 뿐...

 

지금이야 발달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인해 신화나 판타지 영화의 상상으로만 전해오던 장면들을 화려하게 다 영상으로 재현해 내는 영화들이 대다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신화나 인간이 아닌 신들이나 마법의 가호를 받으며 영웅의 길을 걷던 존재들을 현대적인 시각(즉, 초자연적인 부분들을 완전 배제하고 그 시절 그 시점에 현실적으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잇는 그대로 풀어내는)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있었죠. 오래전 트로이(2004)를 보고 느꼈던 충격은 킹 아더(2004)를 보고는 절정에 다다랐고, 동사서독을 보며 더욱 심해지네요...

 

후대 사람들이 이야기로 전하면서 이런저런 상상력과 살을 붙여 영웅시하고 떠받드는 이야기속 영웅들의 실제 삶은 아마도 저렇게도 치열하고 처절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절망적인 절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에게는 참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였습니다.

 

오늘도 포근한 밤 좋은 꿈 꾸세요...